찾아가는 미술관 소개 - 공감 선유

특별 기고 ● 2024

Author

  • 박지예
  • 전북대 객원교수. 미술학박사

찾아가는 미술관

자연 존중의 베이스로 현대인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감성 복합문화공간” 공감선유

공감선유는 언덕정원에서 마음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문화와 자연을 통해 휴식이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현대인을 위한 “감성 문화공간”을 꿈꾸다.

군산에서 차로 좀 더 이동하다보면 시골에 위치한 갤러리 문화공간이 하나 있다. 한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공간에서 보는 모든 뷰가 그림 같은 곳으로 이곳은 바로 공감선유, 새만금 근교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활용하여 건축된 대형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공간은 도심외곽에 위치하여 넓은 옥구평야가 정면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뒤편엔 염병산 자락이 병풍처럼 감고 도는 들과 산속에 자리한 야트막한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과 도심의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중앙에 위치한 산을 중심으로 가장자리에 6개동의 미술관과, 1개동 음악관등 모던한 콘크리트 건물 6개동을, 그리고 100년 초가한옥을 복고하여 현대와 고전이 함께하는 감성의 건축공간을 조성하였다.

공간전체는 건물과 담으로 외부와 차단하면서도 내부에 들어서면 여러개의 공간이 차례로 열리는 다양한 정원을 조성 하여 현대인의 삶에 생각을 잠시 내려 놓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였다“면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상쾌함과 도심에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 다르지만, 이 두가지 감정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건물배치와 디자인에 특히 공을 들였다” 고 설명했다.

공감선유는 모든 건물과 야외에도 음악이 흐르고, 모든 건물에는 시즌마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회가 개최되고 방문객들은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ㅡ전북 미술을 다시본다 ㅡ

산수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석정 남궁훈

석정(石丁) 남궁훈(南宮勳)은 1929년 전북 정읍에서 아버지 남궁중화와 어머니 정거산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산과 강이 있는 천덕리 마을에서 성장했다.

남궁훈은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남궁훈이 정우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담임선생님께 그림을 배우고 학교 대표로 서예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이리(익산) 농림학교에 입학하여 벽천 나상목(1924-1999)을 만나 지도를 받고, 195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심산 노수현(1899-1978)과 제당 배렴(1911-1968)에게 그림을 배워 남종화풍의 전통적인 방식을 공부하였다.

남궁훈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며 활동하던 대학 시절은 우리나라가 암울했던 시기였다. 미술계 활동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 함께 점차 정상적인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으나 6. 25사변으로 혼란한 시기가 되었다. 그는 이런 힘든 시기를 겪으며 작업 에 정진하여 대학 시절 교내 미술대회에서 문교부장관상 및 총장상을 받았으며, 학생 신분으로 1954년부터 1959년까지 국전에 서 연 5회 입선을 하였고 1955년에는 서울미술대전 최고상을 받기도 하였다. 1957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하고 서울에 서 활동하다가 고향인 전라도로 내려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원광대학교 미술교육과가 창설된 1970년 무렵으로 추정된 다. 그리고 1969년부터 1983년까지 전북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맡았고, 1969년부터 1984년까지 원광대학교 미술대 학 교수로 재직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1982년에는 전북 문화상을 수상하며, 대중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남궁훈은 원광대학교에서 지역인재를 발굴하고 지도하며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화의 길을 모색하고 또 대학에서 초대 학장직을 추진력 있게 수행하여 여러 교수진을 초빙하는 등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작품 활동 초기에는 사생을 중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점차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관념적인 산수화 양식과 함께 발목의 효과를 사용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남궁훈은 사생을 바탕으로 한국적 풍경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였고, 소재는 주로 산을 많이 그렸다. 그의 호가 석정(石丁)인 것으로 보아 항상 변치 않은 곧은 심성을 지향하는 마음과 자연을 숭상하고 닮고자 하는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실제 스케치에서 얻어진 산 의 이미지를 작가가 느끼는 감각을 통해 발묵적 효과를 이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수묵화에서 발묵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과 같은 무한성을 함축한다. 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붓을 눕혀 사용하기도 하고 넓은 선에서 오는 농담의 효과 즉 한쪽은 진하고 다른 쪽은 엷게 풀어지는 담묵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남궁훈은 현대적인 한국화 작업을 시도하고자 노력한 작가이다. 당시 서양미술의 유행 등으로 한국화단은 혼란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작가는 진지한 고민을 통한 한국화 의 새로운 모색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화면의 구성에서 옛 전통 방식인 삼원법과 준(皴)에 의존하지 않고 대

(그림1) <산> 67cm×43cm 전주대학교 박물관

상을 확대하여 보거나 화면의 자율성을 강조하였고 채색 과 발묵, 필법 등을 통해 대상의 형태를 해체하거나 재구성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식의 현대 수묵 회화를 시도한 작가라 말할 수 있다. 그는 1984년생을 마칠 때까지 고향에서 후진양성에 힘쓰며 수묵 화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전북은 일찍이 예향의 도시로 이 지역 출신인 남궁훈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고향으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가 원광대학교 재직시절 제자였던 백석만(당시 조교)은

남궁훈의 성품은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이었다고 증언 하였다. 이러한 모습이 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림1)은 산을 주제로 그린 수묵 담채화로

기존의 남도 수묵화의 이미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산의 이미지를 대담한 필치로 붓의 운용과 먹의 발묵, 채색, 담담한 구성 등이 어우러져 기존의 전통 방식과는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정형화된 조선시대의 산수화 형식에서 벗어나 기존의 준법을 사용하지 않고 굵고 넓은 선과 파묵 그리고 발묵의 자유로운 운용에서 다 른 산수화 형식으로 차별화된다. 구도는 오른쪽 위 끝에서 왼쪽 아래 끝으로 향하고 다시 화면 아래

낮은 산으로 돌아오는 역 C자형 구도로 산의 역동 적인 기운을 주는 데 효과적이다. 화면의 오른쪽

(그림2) <산> 87.5cm×66.5cm×4.5cm 정읍시립박물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비백은 폭포가 떨어지는 듯한 연상을 준다. 폭포수는 어느 순간 흰 여백과 한 공간에서 만나 화면의 공간을 확대하는 효과와 여운을 남기게 한다. 배경의 먼 산은 엷은 청색을 이용하며 붓질은 가벼워 더욱 아득한 느낌을 전한다. (그림1) <산>은 남궁훈이 현대 수묵화를 시도한 작가라고 인정할 만한 작품이다. 작가는 그의 마음을 붓에 실어 산의 이미지를 붓이 가는 대로 맡겨 놓은듯하다. 본 작품의 산은 산이면서도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면서도 물이 아닌 그저 작가 자신의 기(氣)와 심상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림2) <산>에서는 쓸쓸한 겨울 산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세부의 형태보다는 전체적인 겨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 으로 엷은 담묵으로 하늘을 칠하고 산은 흰 여백을 군데군데 남긴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여백의 공간은 화면 밖으로 연결성을 갖는다.

(그림3) <산>은 표현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안개 자욱한 산에 자수 정체가 집합된 것처럼 보인다. 산 정상에 붉은 색은 빛이 아름답게 빛나는 듯하다. 안개와 산이 층층이 계단처럼 연결되며 우뚝 솟은 산 정상이 보석 덩어리처럼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또 산허리는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몽안적인 신비감을 준다. 전반적인 모습이 산 이라기 보다는 화려하게 장식된 구조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광복 이후 많은 한국 작가는 우리의 강과 산을 사랑 하고 한국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며 작업 한 것으로 보인다.

1950-60년대는 한국화단에 서양화의 표현주의가 유행하였다. 아마도 남궁훈도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그 당시 유행하였던 방향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 대부분에서 굵고 대담한 붓질과 채색을 적절 하게 사용하여 현대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통 서양화에서는 바탕을 모두 칠해야 완성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으나 한국화는 바탕을 비워두는 것은 또

(그림3) <산> 64cm×71cm 전북도립미술관

다른 여백이 주는 공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림3)<산>은 바탕의 표현이 두드러지고 산의 형상을 더욱더 신비스럽게 해주는 효과를 내기 위해 여백을 적적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통적인 산수화를 바탕으로 남종화를 익히고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자 노력하며 산수를 다양한 각도로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산수화 형식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작품 성향으로 보아 남궁훈은 새로운 예술 활동을 모색하는 작가로 생각된다.

(그림4)는 1977년 정사년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문인들이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그린 문인화로 감의 상징은 소원성취 등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화면은 왼쪽에서 대각선 으로 내려온 감나무 가지를 그렸다. 끝이 잘린 감 잎은 풍성하고 청색과 농묵의 몰골법을 사용하여 촉촉한 물맛을 살렸다. 다만 끝이 잘린 가지 끝이 화면에 머물고 있어 선이 시원하게 뻗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전라도는 오랜 역사를 통해 넉넉한 삶을 꾸려 왔고 이런 환경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예술이 발 달하였다. 그중 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게 다루고 감상할 수 있었던 서화 미술이 크게 발전할 수 있

(그림4) <감> 33.5cm×45cm 전북도립미술관

었으며, 이를 해 문인화도 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림4) <감>은 자연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집에 걸어 놓았고 이는 선인들이 예술작품을 통해 삶의 안정과 위로를 얻는 삶의 지혜이기도 했다. 한 붓으로 시원하고 깔끔하게 그려낸 주홍색 감 과 감잎의 군청색이 가을의 정취를 풍성하게 만든 다. 군청 감잎이 마치 붉은 감을 감싸안고 있는 듯 하여 더욱 편안하고 정감 있는 모습이다. 잎의 가장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맑은 담채의 물맛과 잎맥을 친 농묵이 어우러져 문인의 풍류를 느끼게 한다.

(그림5) <우리 강산>은 1983년 작으로 생의 말년이라 할 수 있다. 산을 주로 그린 작가답게 숙련된 붓의 운용과 과감한 생략이 돋보인다. 필 선과 채색으로 완성된 산수화이다. 녹색과 청색 을 주로 사용하여 여름 산하의 모습을 잘 보여주

(그림4) <감> 33.5cm×45cm 전북도립미술관

고 있다. 왼쪽 아래에서 시작한 근경이 가볍게 이어지는 중경을 지나 비스듬히 우뚝 솟은 원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넓은 시야가

펼쳐지는 구성으로 산이 광대하게 펼쳐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왼쪽 아래의 산에 바위틈으로 얇은 폭포수가 떨어지고 폭포 수는 강으로 연결되어 아기자기한 표현이 되었다.

표현형식은 관념적인 산수화 양식으로 산의 준과 나무의 표현이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먼 산을 더욱더 험준하게 표현 하여 장엄한 느낌이 들어 자욱한 안개 속에 신선이 있을 것 같은 광경으로 더 깊은 공간감이 표현되었다. 강가에 떠다니는 작은 돛단배가 바람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다만 붓질이 좀 빠른 감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남궁훈은 근대와 현대 사이 격정의 시대에 여러 방법으로 산수화를 표현하였고 새로운 한국화의 길을 모색하고자 시도한 작가이다. 그는 묵림회(서울대 미대 동문 한국화단체)가 해체된 이후 실망하지 않고 더욱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으며 평생 자기 수양을 통해 새로운 조형 세계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며 붓을 놓지 않은 작가이다. 이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의 작품세계를 말하자면 종래의 동양화 기법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한국화의 지평으로 승화 확대하려는 데 있다. … 대상의 재현이나 장식보다는 오히려 그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남궁훈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작가로 전북화단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새로운 한국화의 지평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참고자료: 황준택 「석정 남궁훈의 생애와 회화 세계 연구」원광대학교석사논문. 1999.

자료제공: 정읍시립미술관, 원광대학교 신간 제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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