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토(本土)
이 호 억(한국회화회 회원)
이호억 작가는 중앙대학교에서 한국화와 예술학을 전공하고 개인전으로는 갤러리조선에서 열린 『Glowing Face』(2018), 『범람정 원』(2022)과 영은미술관의 『무진』(2022) 등이 있다. 또한 OCI미술관과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활동한 바 있으며, 2017년에는 제1회 광주화루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중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미술학을 강의 하고 있으며, 건양대학교 휴머니티 칼리지 인문 융합학부에 재직 중이다.
일본화에 죽음을 선사하겠다.
오픈런. 최근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서점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마비 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 한강 작가의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미술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어쩌면 주기 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돌고 도는 것이 내가 경험해온 미술계의 한 현상이다. 2008년 문화관광체육부와 조선일보가 야심 차게 준 비한 제1회 아시아프에서 오픈런의 현상을 보았으며, 2023년 1월 26일부터 4월 16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 다 카시의(村上隆, 1962년 2월 1일~) <무라카미 좀비>展이 그랬다.
좋은 소식이 반갑기도 하지만 이번 글에서 언급할 내용은 다소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본 미술계의 무라카미 현상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슈퍼플랫. 일본의 미의식은 가볍고 평면적인 서브컬쳐에 있음을 주장하며, 무라카미가 제시한 일본미술의 근간은 만화 다. 무라카미는 동경예대에서 일본화(동양화)를 전공한 일본화 작가였으며 일찍이 “일본화에 죽음을 선사하겠다.” 선포한 이력이 있다. 동경예대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수석으로 졸업했던 일본화의 적자인 그가 이러한 언급을 했던 원인은, 일본 화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일본의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유신의 가치를 계승하는 서구주의자다. 김옥균의 스승 으로도 알려진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근대 일본의 법학, 의학, 정치, 군사학을 망라한 대부분 인물은 서구주의자들이었 다. 강철로 만든 서양 군함에(흑선) 의해 불바다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고향 땅을 목격한 이 지방의 청년들은 와신상담으로 실력을 쌓았다. 세계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도쿄(에도막부)의 무능을 타계하고 그간 국경과 변방으로서 착취당해온 지방정부 사쓰마와 조 슈는 서로에 대한 오랜 원한을 묻어두고 동맹을 맺는다. 그리고 교토의 천황을 등에 업고 에도막부를 종식 시킴과 동시에 아시아 전체를 디자인하기를 감행한다. 경술국치(庚戌國恥)는 이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이 서사는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17세기 임진왜란 발발 직후 사가현의 영주인 나베시마 나 오시게(1538~1618)는 북진을 포기하고 집요하게 금강 유역에 머물며 도공들을 납치한다. 조선의 도자기는 성과 맞바꿀 정도의 가 치를 지닌 최고의 보물이던 탓이다. 이때 납치되었던 이삼평과 조선 도공들이 건설한 아리타 도자기 산업을 근간으로 이어온 부유 함이 에도의 경제를 뒷받침했고, 훗날 나베시마 가문은(나베시마 나오마사1815~1871) 메이지유신을 후원하며 수도인 에도를 능가 하는 부와 군사력을 축적했다.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암스트롱 캐논포와 군함을 사들였다.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이후 일본의 중 앙 요직 대부분을 이들이 차지했으며, 해군과 육군을 각각 사쓰마와 조슈가 장악한다. 그리고 이들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기에 이 른다.
1866년 가쓰라 고고로(기도 다카요시)의 요청에 따라 6개조 맹약 뒷면에 삿초동맹의 증인인 료마가 내용을 보증하기 위해 붉은 색으로 쓴 삿초동맹 합의서. [일본 궁내청 소장본]
메이지유신을 성공한 서구주의자 이토 히로부미는 수백 년간 일본의 궁전을 장식해온 가노파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명령을 내 린다. 바로 “서양화 같은 일본화를 만들어내라.”라는 주문.
이토의 명에 따라 가노파는 유화와 경쟁하기 위해 유화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석채라 불리는 신암채를 개발하고 채색화기법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이들은 동경예대를 비롯한 일본 미술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한국의 화가 천경자, 박생광 등이 그렇게 발명된 일본화를 배워왔고 이를 한국 미술대학에서 교육했다. 여기에 더해 조선 미술 전람회의 심사위원이 가노파를 계승하는 일
1866년 가쓰라 고고로(기도 다카요시)의 요청에 따라 6개조 맹약 뒷면에 삿초동맹의 증인인 료마가 내용을 보증하기 위해 붉은색으로 쓴 삿초동맹 합의서. [일본 궁내청 소장본]
본화 화가들이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조선에서 미술로서 등단하기 위해서는 서양화와 경쟁하기 위해 창조된 신화. 바로, 일본화를 그려야만 했던 것이었다. 이는 운보 김기창과 월전 장우성의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2016년 북해도 미술관에서 동경예대 일본화학과에서 퇴임한 히라야마 이쿠오의 회고전을 관람하며 가히 석채화의 정점 에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착수된 신암채 개발과 일본화라는 창조된 신화는 이토 히로부미가 목표했 던 서양화 같은 일본화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히라야마 이쿠오의 제자인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러한 일본화의 비밀을 알고 있었 다. 나는, 2003년 일본의 관전이라 일컬어지는 일전(日展)을 관람하기 위해 도쿄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마치 한 사람의 개인전과 같은 모습을 보고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이들의 그림은 마치 공예 같구나.”
통일된 기법과 유사한 주제. 화려한 색채. 마치 장식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업을 전개하는 기준과 의도가 작 가에게 있을 때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내가 본 일전의 모습은 이토 히로부미의 명을 계승한 가노파의 재현처럼 느껴졌다. 결국, 현대 일본화는 공예를 계승한 다른 방식의 공예다. 무라카미가 일본화에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말은 자신은 예술가 되겠노라 천명 하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의 국수주의 경제인에 의해 수집되어오던 일본화의 매매도 지금은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한때 는 서양화의 세배 가격에 거래되었던 일본화의 몰락이었다. 일본화에 죽음을 선사하겠다던 탕아 무라카미의 성공과 비견 된다.
한류와 경쟁하는 쿨 재팬의 핵심은 무엇인가.
무라카미의 성공은 일본의 국가정책에도 반영되었다. 일본은, 대중예술로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는 한류와 경쟁하고, 경제 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으로 멋진 일본이라는 의미의 쿨재팬 정책을 실행했다. 이 쿨 재팬의 전면에는 만화가 있으며 만화의 조상 을 우끼요에와 우끼요에를 그린 죠닌 계급의 화가인 호쿠사이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죠닌은 가노파와 대치되는 평민 화가들이다. 일본의 작전은 국내외를 망라한다. 2024년 여름. 네덜란드의 반 고호 미술관에서는 일본 만화 피카츄를 고호의 작품과 결합한 특 별전이 열리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로 한해 늦게 열린 2020도쿄올림픽을 보더라도 일본 정부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올림픽 에 참가하기 위한 선수와 모든 외국인 기자는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입국할 수밖에 없다. 나리타 국제공항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 이 되어 에도시대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かつしか ほくさい, 1760년 10월 31일 ~ 1849년 5월 10일)의 후지산 36 경을 디지털 이미지와 함께 메타버스(metaverse) 환경을 만들어 공항이용객이 곧 호쿠사이의 작품 속을 거닐며 관람하는 체험객
무라카미 다카시 시그니처 캐릭터 플라워와 뉴진스가 함께하며 새롭게 탄생한 ‘플라워 캐릭터’ ⓒ IPX 2024-06-26
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손자의 도박 빚을 갚아주기 위해 70세가 넘은 몸을 이끌어 제작한 이 후지산 36경은 쿨 재팬의 상징적 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심지어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은 후지산 36경 중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작품을 모방하는 과정에 서 탄생했음이 유력한데, 이에 관해서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의 내용과 두 작품의 유사성을 보았을 때 고호가 호쿠사이의 그림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화풍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일련의 사건들은 만화의 종주국이 일본임을 과시하는 것이다. 일본의 만화산업은 일본의 자동차 산업을 능가하는 외화를 벌어 다 주고 있으며, 대기업의 총수들과 더불어 일본 내 최고의 부자들은 만화가다. 쿨 재팬의 핵심은 인상파 탄생의 기원이 일본임을 다시금 천명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정책이 향하는 곳은 우월한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다시금 세계사에 주인 공이 되고자 하는 일본의 야심이 투영된 정책이다. 반면, 이 쿨 재팬 정책에 있어서 가노파와 근현대 일본화는 철저히 외면된 상태 다. 이제 일본의 재벌은 일본화를 사지 않는다.
쿨 재팬은 자포니즘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사람들의 자신감은 과거 열도를 장악한 메이지유신세력이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 공예와 이를 포장하기 위한 완충재 역 할을 한 우키요에를 소개하며 예상치 못한 판매와 관심을 경험한 것에 근거한다. 이것이 곧 일본 열풍. 이른바 자포니즘으로 이어 지게 된 것이다. 모네와 고호는 광적으로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모방해 그리기를 거듭한다. 산수의 파편인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는 그렇게 유화로 옮겨지는 과정을 겪는다. 이 시기, 제국을 제외한 타자의 개념으로 쓰이던 오리엔탈의 의미도 자포니즘을 계기로 신 비롭고 아름다운 동쪽 바다의 땅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생성되기에 이른다. 자포니즘은 서양인들에게 전에 없던 총체적 사유라는 현상을 일으켰다.
우키요에 속에는 산수개념이 녹아있었으며, 원근법과 소실점으로 귀결되는 세계관을 지닌 유럽사람들에게 우키요에는 화가의 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큰 오해를 일으킨 것이다. 주문자가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된 이동 시점과 다 시 점과 간결한 선적 표현은, 원근법의 세계와 만나 일종의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근대 미술을 탄생시켰다. 공예가 공예를 만나 오해로
인해 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곧 일본인들의 우월감으로 이어졌으며 오늘날 일본인들이 인상파 화가들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 것이다.
다시, 한국을 바라본다.
은하철도999, 세일러문,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등 아시아 세계의 80년대와 90년대생의 문화공통분모는 일본 만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젊은 화가들에게 선각자와 같았던 무라카미의 작업을 한 번이라도 보았던 아시아의 젊은 화가들은 자신들 내면에 향수 처럼 살아있는 일본 만화를 근간으로 한 슈퍼 플랫 개념의 작업을 다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팝아트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활 동하고 있는 이들의 인기는 그들의 아비인 무라카미를 능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나는, 무라카미가 자신의 아비인 일본화를 지 우는 방식으로 자신을 탄생시켰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의 분노가 슈퍼플랫을 탄생시켰듯이 예술의 가장 중요 한 가치는 ‘저항’이다. 그 저항의 근간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을 훔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Fast follower가 아닌, First mover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맥락에서 민화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일본을 비롯한 서구 미술의 대척 상징으로 19세기 조선 반도에서 출현한 민화를 조명하고 이와 관련된 특별전시와 연 구발표도 다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민화란 무엇인가.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년 3월 21일 ~ 1961년 5월 3일)가 민화를 명명하고 정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사람들의 미의식을 한계 지었음에 문제의식을 설정할 수 있었다. 한국의 화가들에게 야나기의 주장이 계승되었던 그 중심에 야나기가 발굴하고 명명한 ‘민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는 슬픔의 미, 비애의 미다.”(야나기 무네요시)
인간의 가능성을 한계짓는 일은 전근대의 계급 질서를 계승하는 폐단이다. 나는, 이러한 근대의 결핍을 보완하고자 이 문제를 지 적하기로 했다. 야나기가 언급한 민예 운동과 그 핵심 개념인 타력은 야나기 개인의 주장으로 종결되어도 될 이야기였으나 야나기 의 주장은 반도예술의 물줄기에 일종의 방향을 만들어 버린 것이 문제다. 타력의 아름다움을 풀어보자면 토장국 같은 그림, 해학, 소탈, 유머 등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확정한 것이다.
이는 한국인이 아름다움을 분별하는 것에 있어, 자신의 사유에서 문제를 도출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의 기준에 합치 여부를 따지 는 오류를 범하게 했다. 여기에는 조선의 아름다움은 비애의 미라는 야나기의 주장을 의구심 없이 받아들인 한국인의 수동적인 태 도와 판단력 부재도 일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결국, 줄에 묶인 채 성장한 코끼리가 줄을 풀렸음에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의식의 속박을 지적하는 일이다. 이 문제는 내가 한국화를 전공해오며 피부로 느낀 문제들이었으며 이러한 문제는 작품의 방향뿐 아니라 화가들의 삶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나가는 말
서구주의자가 되는 것으로서 일본을 지키고자 했던 일본인들의 과도기적 몸짓이 오늘날 한국의 미의식에 영향을 주는 형국에 서 탈출해야 한다. 일본인들이 서구를 의식하고 경쟁하고자 설정했던 동양이라는 개념. 해방 이후 다시 이 개념을 건설한 일본을 경쟁하고자 하는 한국의 화가들은 이중의 경쟁, 이중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이제는 일본도 한국도 여느 유럽국가보다 꽤 잘사 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다른 나라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구성하지 않아도 된다. 공예가 공예를 오해한 것에 비롯되었을지라도, 예술의 탄생이 오늘날 인류의 도전과 번영을 이끌어 왔음을 기억하자. 본질에 집중하자. 내가 나로서 판단하고 사유할 때. 제2의 제3의 무엇이 아 닌, 온전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설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방황하던 어느 밤. 나는 독립문에 무작정 내려 모든 걸 게워내고 돌 위에 누워 잠들었다. 사대하던 중국과 천년의 악연 을 끝내고 근대국가로 나아가길 염원했던 서재필 박사의 독립문 아래에서 새벽녘 내리는 이슬비에 잠이 깼다. 그리고 나는, 나의 독립을 다짐했다. 예술의 본토(本土)는 작가가 서 있는 이곳이다.
2024/11/04 정릉에서
Kiaf와 Frieze 공동주최로 인한 미술 시장의 변화와 한국 갤러리와 작가의 대응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Frieze(프리즈)가 서울에서 공동개최된 것은 한국 미술 시장과 한국 작가들에게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미술 시장 규모의 확장을 넘어서, 한국 미술이 아시아와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갤러리 들과 작가들은 더 많은 글로벌 시장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공동개최의 영향과 그로 인한 한국 갤러리들과 작가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방안과 전략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한국미술시장의 성장을 위한 모색을 짚어보 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한국화랑협회는 프리즈와 5년간의 한시적 공동개최를 협약하였습니다.
Kiaf와 Frieze의 공동개최는 한국 미술 시장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화랑협회가 이끄는 KIAF와 런던을 기반으로 출범한 글로벌 프랜차이즈아트페어 Frieze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화랑협회는 1976년에 화랑 회원 간의 소통과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되었으며 당시로서는 규모나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나 2002년 키아프 출범과 더불어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한국화랑협회의 꾸준히 노력한 결과이기 도 하지만 한국 작가들의 부각,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획기적인 성장, K-문화 시장의 확산에 힘입은 바도 있습니다.
‘2024 키아프서울’는 국내갤러리 132개, 해외 74개, 총 22개국에서 207개 갤러리가 참가하였습니다.
Frieze는 영국을 기반으로 프리즈 매거진이라는 현대미술잡지로 시작하여 2003년 런던에서 첫 번째 프리즈 아트페어를 개최 하였으며 2014년부터 고전, 근대, 20세기 초의 작품을 마스터즈섹션으로 아우르며 현대 미술 시장의 규모를 확장 시켰고, 프리 즈로스앤젤러스에서는 미술과 엔터테이먼트의 융합을 시도하는등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아트페어의 중심에 있습니다. 현재, 프리즈런던 프리즈뉴욕 프리즈로스앤젤러스 운영하고 있으며 2022년에 프리즈 서울을 출범시키면서 아시아 전역에 그 영향력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2024 프리즈 서울’은 30여 개국에서 110개 갤러리가 참여했습니다.
한국화랑협회와 프리즈의 공동 주최의 결과로 동일장소 동일기간에 대규모의 아트페어가 전개되고 국제적인 컬렉터와 갤러리 관계자들이 서울로 모이면서, 한국 미술 시장은 아시아의 중심 허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미술 작품이 단순히 국내에서 보여지는것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전역과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한국 미술 시장의 국제화와 전문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제수준의 컬렉터, 갤러리, 큐레이터들이 한국 미술과 작가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작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선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 장터로 부상하며 국제적 담론을 형성하고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스팟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바탕으로, 한국 작가들은 더욱 주목받고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서는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며 자신의 예술 세계를 더욱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에 해외 큐레이터와 비평가들과의 적극적인 만남을 통해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세계를 확장 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이룩한 성과를 주목했을 때 한국의 전통적인 미술적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해 얻어진 결과물로 부각 되는 작가는 이우환 박서보 이배 양혜규 등으로 프리즈와 키아프, 아트바젤, 아트 바젤홍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 활용은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그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은 소셜 미디어, 온라인 갤러리, 디지털 미술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여 국제적인 관객층과 소통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다양한 국가의 컬렉터와 관객들에게 접근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의 갤러리 역시 같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 나가야 합니다.
미술품 거래에 있어서 진위 감정과 가격의 투명성은 미술 시장에서 신뢰를 얻는데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건입니다. 한국미술 시장의 발전에 필요한 투명성과 공정성은 갤러리와 작가들 모두에게 요구됩니다. 미술가 단체에서 책정한 작가별 호당가격은 ‘예술품을 통한 재테크’라는 명목으로 불법 미술품유통업자에게 도용, 악용되기도 하였으며 작가 자신이 임의로 정한 미술품의 가격 역시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의 격차가 있음으로해서 갤러리와 컬렉터 간의 불신이 조장되고 미술 시장은 신뢰를 잃고 위축됩니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곧바로 경매시장으로 진출 하는 경우도 지양되어야 합니다.
작품가격이 작가를 저울질하는 척도로 보여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하며 경매라는 특성상 가격변동이 크고 투자라는 명목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지속 가능한 미술 시장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미술시장이 글로벌 컬렉터들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여러 경로로 거래되는 작품가격이 공인된 자산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로 투명성, 공정성을 꼽아봤습니다.
Kiaf와 프리즈의 공동개최는 한국 미술 시장과 한국 작가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한 중요한 계기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은 국제적 무대에서 더욱 인정받고, 한국 작가들은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협력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확장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갤러리와 작가들 모두가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맞춘 전략적 변화와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더 큰 성과를 이루고,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