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다시 호남의 중심으로’의 미술적 실현을 위해
정진용(Ph.D. /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 학과장)
전주 시립미술관이 끝내 무산? 반려? 연기??? 어찌되었 다나 뭐라나... 지난 수년동안 미술전문가들 불러서 들썩들썩하게 분위기만 잡더니 이게 뭔 날벼락인가? 대한민국 미술전문가들이 라는 사람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다가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팽 당해도 되는 그런 존재인가? 우리 전북의 미술단체나 언론등 누구도 이 문제를 성토하지 않는다. 직무유기인가 자격미달인가. 이곳 전라북도에 미술판이란게 있긴 한것인가.
광주비엔날레. 수묵비엔날레. 아트광주. 디자인비엔날레. 하다못해 수천만원짜리 광주화루. 광주신세계미술제까지 전라도의 모든 미술 인프라는 전남광주가 싹쓰리해 놓고도 그들은 늘 배고프다 아쉽다 말한다. 그러나 유명무실한 서예비엔 날레만 겨우 유치하고 있는 처참한 전북전주미술계의 현실에 대 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구나. 우리가 대학에서 예비 미술가를 키워 내보내도 이 동네에서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서울 경기 인천 김해 창원 일산 해남에서 온 아이들 은 학업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란 말인가. 현실을 이렇게 누더기 로 만들면서 인구유입을 논하고 지역소멸을 걱정하는가? 전남 광주는 수십년간 미술문화의 인프라를 충실히 구축해 나갔건만, 여기에서는 이제 사 다 되어가는 밥에 재가 뿌려져도 그것을 그냥 퍼먹으려는 것, 과연 왕족과 양반의 인심이란 이러한 것인가...
위는 9월 16일자로 저의 페이스북에 올린 자조의 글입니다. 오늘날 우리 전북의 미술계 현실과 전남에 편향밀집된 미술인 프라와 비교견적을 논하고 심각성을 알리고자 올렸습니다. 이어 지는 글은 작년 전북예총 30주년기념 행사장에서 제가 상기의 제목으로 발제한 원고를 마무리만 각색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그저 한번 일시적인 행사에 쓰여지고 사라질 논조가 되기엔 제 공력이 많이 소모되었고, 또한 우리 전북미술계에 대한 전문가 로서의 제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평하는 이유로, 이렇게 한국회화지면을 통해 재 소개합니다. 이제 어디선가 누군가는 읽어 볼 글을 다시 펼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술에 “과거와 현재가 따로 없고, 동양과 서양 의 구분이 의미없다.” 라고 말합니다. 과연 인류의 긴 시간 속에 서 미술이 늘 동일한 인식지평에서 평가되어 왔을까요? 혹여 휴 머니티의 역사 속에 언제 한번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각설하고 만일 피카소가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쓰레기취급을 받았 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선과 김홍도는 어떻습니까? 그분들이 조선 초기에 태어났어도 그리 높이 평가되었을지는 미지수입니 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도 무용도 각각 그 시절의 감수성이 있고, 그 시대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대상이자 시대정신 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간으로 말하자면, 예컨대 워홀의 먼로시리즈가 국립박물 관에 소장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물론 고려청자가 MOMA에 등장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렇듯 미 술은 시간과 공간에 적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미 술이 모든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여 미술학적으로, 또한 미학적 으로 초월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허세이자 오만입니다. 그럼 이런 문제는 어떻습니까? ‘창작의 자유가 사 회공동체의 가치규준을 넘어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 같은 것 말이죠.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유명배우와 함께 마 약을 흡입한 91년생의 젊은 작가가 버젓이 무려 일천만원의 제 작지원을 받고 전시에 초대되었다는 사실은, 현대미술계의 정 신적 해이(moral hazard)와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고민할 문제 들에 우리를 다시금 사로잡히게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정과 존중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경우를 간혹 봅니다. 소수자, 약자로 규정된 집단의 개인성향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대중의 공 리로 강요되는 시대 속에서, 부덕과 몰염치가 문화예술의 기능 에 편승하거나 기생하는 현상은 우리 문화계에서 심심찮게 목격 됩니다. 해당 작가가 성소수자로서 퀴어를 선언한 것이 모든 상 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 듯 표현의 자유와 검열사이에서 예술, 특히 미술은 늘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러나 사회공동체에서 요구되는 최소와 최저수준의
도덕과 윤리조차 부정한 검열로 여겨진다면, 그런 사회에서 다 수대중의 판단과 건강한 공공성은 절대 보장받을 수 없게 될 것 입니다.
전주시 인구변화, 통계청(KOSIS) https: /kostat.go.kr/unifSearch/search.es
문화예술에 관련하여 휴머니티의 목표가 결정화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작용 반작용의 연속이자, 보류 와 진행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현상들을 포함합니다. 그러 므로 문화현상의 어떤 지점에서 무엇이 완전히 옳다 그르다 판정할 수 없으나, 어떤 것이 우리에게 원치 않는 감정이나 판정 들을 강요할 때, 우리는 순수하게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순전히 있습니다.
호남의 중심, 전주는 가능한가?
이제 우리 전북전주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미술가치의 판단과는 별 개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미술문화의 현실은 우리지역의 고 유하고 독창적인 가치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의 부족이고, 때문 에 구체적 실행을 위한 수렴과 합의의 이정표가 세워지지 않았 다는 것입니다. 목표의 부재는 시간낭비만을 낳습니다. 우리는 지금 ‘버텨온 30년이라는’이라는 위기상황에 대한 암시를 받고 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고장에서 말 그대로 버 텨온 것은 예술만은 아닙니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자 가장 가난한 지역이라는 불명예를 꾸준히 유지 하여 온 것은 정치적 문제이므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풍 요란 말을 그리 쉽게 거론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 풍요롭다면 왜 사람들이 이곳을 떠날까요? 지난해 대부분 젊은이들로 이루 어진 무려 4000명의 인구가 우리고장을 떠났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경제활동과 취업, 충족형 생 활인프라, 문화예술 향유기회 등의 부족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극복과 가능성을 찾기 위한 변 화를 거부하는 시니어들의 고집들은, 주니어들의 건강한 미래
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실 겁니다. 인구절벽, 학령 인구축소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돈으로 출산을 장려하 자고 할 뿐, 현재 젊은이들이 살아갈 환경조성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마치 완행열차같은 우리고장의 변화와 발전의 스피 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제를 한정하고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추진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성숙한 젊은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판이 우리지역에 깔려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남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남광주가 가진 미술관련 인프라는 실로 방대하고 강력합니다. 광주비엔 날레, 전남수묵비엔날레,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발, 광주화루, 광 주시미술상, 아트광주, 신세계미술제와 같은 대형미술행사와 공 모전이 있는가 하면, 광주시립미술관, 비엔날레관, ACC, GMAP 등, 오로지 미술과 문화행사를 위한 국제적규모의 초대형시설들 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수 있습니까? 시립 미술관은 고사하고 비엔날레급 행사라고는 최대 18억 예산으로 진행된 서예비엔날레가 유일하지 않습니까? 2024년 광주비엔
날레 총예산이 알려진 것만 151억, 전남수묵비엔날레의 예산은 54억에 달합니다. 동학을 518과 연결하여 광주시립미 술관이 전시추진하고 판소리라는 타이틀마저 광주비엔날레의
슬으로 넘겨줘 버린, 허탈한 전북미술계의 현실을 우리는 마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모전의 사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원자의 입장에서 공모전의 위상과 가치는 상금과 평판에 비례합니다. 대상의 경우 광주화루 3000만원, 신세계 미술제(전북전남작가를 대상으로 하다 2022년부터 전남광주출신 작가로 한정하여 진행함)2000만원, 광주문화예술상 한국화, 서양화부분 각 1000만원입니다. 우리전북전주에서 진행하는 미술상은 관급미술상은 아예 없고, 그나마 민간에서 진행하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대상상금 500만원입니다. 이토록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의 말대로 전북은 음악공연에 투자하 느라 미술전시는 전남으로 밀어내는 것입니까? 대체 무엇이 전북전주와 전남광주의 미술문화의 역량 차이를 이렇게 벌려놓 는단 말입니까.
대학경쟁력의 측면에서 보면, 전남광주는 전북전주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까요? 2023년 중앙일보에서 주관한 대학평가를 보면 대한민국 최상위 20개 대학에 유일하게 들어가 있는 국립대학은 전북대 학교입니다. 탑 20의 자리는 2022년에는 부산대(20위), 2024 년에는 경북대(20위)에 자리를 내줬지만, 한반도에서 제주를 포 함한 호서남부지역의 지역거점국립대학 중에서, 영동지역을 대 표하는 부산대와 경북대를 상대로 국립대 평가서열 1. 2위 다툼 을 하는 대학은 오직 전북대밖에 없으며, 서울대를 제외하고 대 한민국 종합대학 탑 20에 거론되는 단일의 국립대학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학평가중 가장 공신력있다고 여겨지는 영국의 QS(Qu acquarelli Symonds)가 지난 6일 공개한1) 경북대(101위) GIST(105위) 인하대(116위) 동국대 전북대(각 118위, 이하 동 순 위 대학명 나열은 QS 발표 알파벳 순) 아주대 한국외대(각 124 위) 건국대(140위) 서울시립대(166위) 충남대(193위) 전남대
(200위) 울산대(248위) 영남대(257위) 가톨릭대(265위) 숙명 여대(273위) 순천향대(288위) 성신여대(294위) 부경대(299 위) 충북대(305위) 강원대(310위) 국민대 서울과기대(각 324 위) 단국대(339위) 제주대(359위) 가천대(384위) 경상국립 대(388위) 숭실대(431-440위) 광운대(441-450위) 한림대 인천대(각 461-470위) 홍익대(471-480위) 영산대(481-490위) 우송대(541-560위) 인제대 한동대 한국해양대(각 561-580위) 부산외대 명지대(각 601-620위) 조선대 경기대 상명대(각 621-640위) 창원대 군산대 경남대 선문대(각 661-680위) 강릉원주 대(681-700위) 동아대 동서대 덕성여대 계명대 서울교대 원광 대(각 701-750위) 한국교원대 국립금오공대 경성대 서울여대 순 천대(각 751-800위) 안양대 대구대 한남대 한성대 공주대 목포 대 삼육대 신라대(각 801-850위) 안동대 대전대 대진대 한서대 건양대 배재대 수원대 용인대(각 851-900위) 청주대 동덕여대 동의대 광주대 호남대 호서대 강남대 가톨릭관동대 경일대 상지 대 세명대 서경대 동명대(각 901+).
전 세계 4848개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에서도 전 북대는 681~690에 위치하고 전남대와 충남대는 851~900사이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북대학교의 바로 위로는 한국외대와 서강대, 아주대등 주로 인서울 4년제 주요 사립대학들이 분포하 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전북대가 대한민국 거점국립 대 중 최상위권에 위치 해있다는 것은 대학교수들 사이에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대학이 만드는 긍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전주로 유입되 는 국내인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도시의 인구유입가능성과 수준에 고려되는 정주여건과 인프라를 말할 때, 전주는 제조업 중심으로 변화한 천안이나 마산과 합병한 공업도시 창원, 그리 고 국립현대미술관와 공예비엔날레의 성공유치로 비약한 청주 에 비해서 열악합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취업 일자리와 문화향유의 인프라가 부족하니, 거주환경으로서 매력
2025 QS 아시아 대학 순위/ 984개 대학 중 100위권과 그 이하.
경북대(101위) GIST(105위) 인하대(116위) 동국대 전북대(각 118위, 이하 동 순위 대학명 나열은 QS 발표 알파벳 순) 아주대 한국외대(각 124위) 건국대 (140위) 서울시립대(166위) 충남대(193위) 전남대(200위) 울산대(248위) 영남대(257위) 가톨릭대(265위) 숙명여대(273위) 순천향대(288위) 성신여대 (294위) 부경대(299위) 충북대(305위) 강원대(310위) 국민대 서울과기대(각 324위) 단국대(339위) 제주대(359위) 가천대(384위) 경상국립대(388위) 숭실대(431-440위) 광운대(441-450위) 한림대 인천대(각 461-470위) 홍익대(471-480위) 영산대(481-490위) 우송대(541-560위) 인제대 한동대 한국 해양대(각 561-580위) 부산외대 명지대(각 601-620위) 조선대 경기대 상명대(각 621-640위) 창원대 군산대 경남대 선문대(각 661-680위) 강릉원주대 (681-700위) 동아대 동서대 덕성여대 계명대 서울교대 원광대(각 701-750위) 한국교원대 국립금오공대 경성대 서울여대 순천대(각 751-800위) 안양대 대구대 한남대 한성대 공주대 목포대 삼육대 신라대(각 801-850위) 안동대 대전대 대진대 한서대 건양대 배재대 수원대 용인대(각 851-900위) 청주대 동덕 여대 동의대 광주대 호남대 호서대 강남대 가톨릭관동대 경일대 상지대 세명대 서경대 동명대(각 901+).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982 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982 2024, 11, 17.
적일 리가 없습니다. 음식과 한옥마을에 치우친 관광업기반의 빈약한 경제구조는 청년인구유입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 다. 게다가 인구 64만의 지역거점 대도시임에도 시립미술관조 차도 없는 현실은 광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미술문화의 인프 라를 처절하게 깨닫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전북전주 는 다시 호남의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전주하면 떠오르는 것.
전주는 명실상부한 예향이자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는 이미 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력한 슬로건들 을 좀처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 이 모든 영향력 을 오로지 먹거리에만 올인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 사 실입니다. 전주를 상징하는 것, 무엇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대한 민국사람들은 전주하면 떠오르는 것을 비빔밥과 한옥마을로 여 길 것입니다. 여기에 물짜장과 초코파이 정도를 더하면 전주의 이미지는 대략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처럼 전라북 도와 전주시를 인식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음식이 차지하고 있습 니다. 대체 미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저는 십여년 전 동문사거리 어디쯤에서 열렸던 도시재생발전 포럼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품이 예술로서 의미를 유지하려면, 그것이 놓여지는 장소, 혹은 공간의 역사성이나 지역성과 별개의 가치로 취급되어져 야 한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있는 곳과 보는 것을 동일시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 를테면 전주라고 해서 반드시 전통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소재나 물건들을 창작의 조건에 삼투시켜야 한다는 것은, 미술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리를 예술로 대하길 원할 때, 시민관객으로 하여금 지역의 정해진 의미와 가치 에 준거해서 거리의 미술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 보다는 관광상품에 가깝게 여겨질 것이다. _ 미술생태도시로서의 전주/ 2013년 9월 9일
이 의욕적이고 경솔한 텍스트들은 이제 저에게 흑역사로 남았 습니다. 저는 대학입학을 위해 1991년 서울로 떠났고, 2018년 전 주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2014년의 발표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을 뵈러 방문하던 고향 전주를 바라보는 관점, 마치 이방 인의 시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2018년에 전주에 전입 하고 6년이 지난 지금, 지역의 거리와 미술에 대한 저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술은 시간과 공간 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지역미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전북전주를 상징하는 어떤 예술형태들이 특별히 고려되고 장려 되어야 합니다. 지역특성화의 콘텐츠가 불분명하게 설정되고 기 획되어 왔고, 한편으로는 전라도라는 포괄적인 이미지에 빠져 전남광주의 아우성치는 듯한 발전에 대리만족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는 ‘버텨온 30년’이라는 말이 나오 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미술문화의 관 점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문제에 당면하여, 무엇보다도 외부로부터의 평판을 만드는 지역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외적으로 우리 전라북도를 “엄마의 땅”이라 말하고, 전 주를 “왕의 도시”로 정의합니다. 어머니와 왕, 이 두 단어보다 벅 차고 숭고한 말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땅이자 왕의 도시인 나의 자랑스런 고향이 감내해 온 각종의 저평가들 에는 분명 예술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무 엇일까요. 작가의 부재? 미술인구의 부족? 혹은 다각적인 지원 제도의 부실? 이 중 어떤 것도 지금 우리지역의 낙후된 미술문화 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결코 관심의 부재는 아닙니다. 다 만 도시의 명성과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고 미술이 자력적으로 꽃피우는 환경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아쉽다는 것입니다. 전남광 주가 올해 광주비엔날레 15회차 30주년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 히 미술관련 인프라를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구축해 올 동안 우 리 전북전주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또한 지속해 왔는지 돌아 봐야 합니다.
동시대의 한국성.
우리 전북전주를 말하는 ‘가장 한국적인’이라는 수사에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전북대에서 세계한인 비지니스대회가 열렸습니다. 2024년 22회를 맞은 세계한인대 회는 세계각처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인사업가들을 국내에 초 청하여 각종 교류와 협력관계를 유치할 수 있는 국제규모의 행 사였습니다. 당초 인천개최를 낙점했던 세계한인비지니스대회 가 전북전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고국과 고 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성공적인 삶을 일군 한인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경험을 선사하는데 전주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우리고장은 타지역에서 감히 넘볼 수 없는 뚜렷한 정체성이 있고, 그것은 바로 ‘한국적인’이란
말과 함께합니다.
한국적, 한국성, 한국미 이런 말들은 우리미술의 차이를 증명 하는 매개와 단서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시대 미술을 왜 12개들이 연필 한 다스처럼 생각할까요. 연필들의 쓰 임에 큰 구분은 없습니다. 2B, 4B등 흑심의 차이가 있다 하더 라도 모두 같은 용도로 취급되는 것이지요. 전문가가 아닌 이 상 연필이란, 우리에게 집히는 대로 그저 필기도구로서 사용되 는 것입니다. 현대미술판에서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 습니다. 장르탈출 또는 초월을 명분으로 모든 다양성을 물타기 하며 싸잡아 판단해버리는 것이지요. 게다가 대부분의 비평에 한국 미학과 미술적 판단은 소외되어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 그 리고 그것에 속한 사람들의 가치관은 미술뿐 아니라 미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동양과 서양의 미학, 그리고 한국미학의 코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혹은 서구세계가 쌓아 온 미학적 미술학적 코드가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판단에서 그것을 모든 미술장르에 적용시키고자 한다면, 문화는 그만큼 단순해집니다. 다양성과 특수성이 결여 된 문화가 매력적일 리 없습니다. 전주의 식재벌이라 불리는 점포들의 특징은 맛의 통일이 아니라 특수성의 강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전북전주가 지향하는 ‘한국적인’이라는 말들은, 우리의 동시대미술에서 거대한 줄기가 아니라 한낱 가지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보편성과 대중성만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학문적 지표와 성과에 세계의 모든 현상을 믹스하여 해석합니 다. 지나간 국제화시대의 정치, 경제, 학문적 오류가 바로 이렇 습니다. 보편의 경계에서 소외된 특수한 학문과 예술은 점점 쇠 락과 사장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한국성과 한국미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목표들은 대학과 시장의 현장에서 그렇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는 로컬리티 의 캐릭터와는 별개로 전주예고에서 한국화전공의 소멸과 전북 대학교 한국화전공의 입결만 봐도, 우리 전북전주가 가지는 한 국성에 대한 관심과 의미부여가 얼마나 소극적인지 알 수 있습 니다.
연필 다스 안에 만년필이 들어있다면 그것은 연필일까요? 연 필이나 만년필이나 모두 필기도구지만 정체성이 달라질 때, 구 분은 명확해 지고 의미는 달라집니다. 가치의 명확함은 차이로 부터 발생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가 가진 차이를 말하 지 않는다면, 우리지역 미술의 미래는 어두워집니다. 지금 대한
민국을 뒤덮은 동시대 미술의 현장은 흡사 미국과 유럽의 현장 을 옮겨다 놓은 듯 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우 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우리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면, ‘한민족’이라는 우리에서 잘 길러져 온 고유의 ‘한국미’ 혹 은 ‘한국성’이 크게 존중받게 될 것이라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서양주도의 동시대 문화 속에 물타기 되어, 대충 존재인 지 만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간혹 이벤트주제로 활 용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금 한류라 말하는 한국주도의 세 계적 문화흐름에 우리의 전형이 얼마나 보여 지고 있는지 생각 해 보십시오. 우리가 한류라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서양 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 왔던 서양의 대중문화에서 이름을 날리는 젊은이들이 그저 ‘한국인’ 혹은 ‘한국인의 혈통’을 가졌다 는 것이 아닙니까. 최근 아파트로 유명한 로제(한국이름 박채영/ 뉴질랜드출생, 한국과 뉴질랜드 이중국적)는 미국가수 브루노 마스과 협업하여 전 세계에 아파트라는 생소한 단어를 떼창하 게 만들었습니다. 아파트라는 말이 한국에서만 쓰인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문화의 전파의 성공사례가 되는 것인가요? 그들의 패션, 생활, 취미, 취향 모든 것이 미국중심의 서양문화권에서 수 백년간 쌓아온 자본주의문화의 강력한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한류는 사실 그저 그것에 일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역할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한국과 한국 인에 대한 다양한 관심사들이 그 증거지요. 그러나 미술은 대중 문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설하고, 지금 대한민국의 미술시장에서 어디에 한국미, 한 국성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한국에서 주최하는 아트페어의 현장 을 뒤덮은 것들은 온통 서양정서라든가 무국적의 현대성을 드 러내고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모택동의 초상화가 시장에서 히트를 치던 시절이 있었지요. 대체 그때의 그 작가들은 무슨 생 각을 하고 작업했을까요? 이제 지금의 작가들은 그들의 그림에 심심찮게 뉴욕과 파리의 풍경들과 백인과 흑인들을 자연스레 등장시킵니다. 흡사 익숙한 서양작가의 그림을 모방한다거나 그 같은 이미지들을 세련되었다거나 현대적이라 평가하는 태도 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들을 우리는 동시대 의 정체성이라 평가하지만, 아시다시피 동시대는 결정화된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미술의 담론은 진행 중이며 진행형의 상태는 결론지어질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로제의 아파 트에 열광하는 세대에게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노래들의 가치 는 무효할 겁니다.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는 동시대의 관점에서
그간 우리미술이 취급된 방식이 이렇습니다. 그러나 특정시대 와 세대에게 외면받으면 그것은 의미 없는 것인가요? 아무리 거 시기 해 보여도 존재하는 어떤 것은 분명 누구에게는 소중할 것 이라는 그런 식의 나이브한 갬성이 아니라, 예술의 판단과 비전 이 어찌 현재와 미래에만 향해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입 니다. 정작 난데없이 인기를 끌더라도, 설령 그것이 글로벌히트 를 치게 되더라도 한국사회에서는 우리고유의 가치를 내포하지 못하는 것들이란, 결국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조선시대의 중국모방, 근대이후의 일본모방, 현대사회의 미국 모방과 같이 우리는 늘 월드클래스의 잣대를 동시대에서 우리보 다 잘 산다는 나라들의 정체성을 모방하는 것으로 삼아왔습니 다. 늘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보다 현대적이라 판정하는 나라와 문화를 모방하려는 습성, 그 녹진한 모화(慕華)와 사대(事大)의 태도가 우리정신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은 온전히 우리 의 것을 말할 때 은근히 감추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는 세계와 차이를 좁히려는 태도가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입 장으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 한다면 우리문화, 또는 우리미술이라는 말은 나날이 불분명해질 것입니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무시받을 지언정, 아리랑이 외면받 지는 않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북전주의 ‘가장 한국적인’이라는 슬로건의 이미지를 ‘금순이’가 아니라 ‘아리랑’처럼 만들어야 하 는 이유입니다. 만년필처럼 좀처럼 쓰이지 않지만 존재감이 분 명한 것, 흔하디 흔한 연필묶음에 섞여 있는 보물 같은 ‘다른 것’ 을 우리 전북전주는 품고 있지 않습니까.
전북전주의 미술, 한국미의 상징으로.
별로 어려운 이야기 없이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러한 판단 과 목표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전라북도민 이자 전주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장소가 만드는 역사성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우리는 그 특별함을 로컬리티의 상징적 시그니처로서 확립시켜야 합니다. 지역에 대한 외부의 평가와 의미가치는 이것을 통해 증명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지역미술의 목표는 지역을 상징하는 시대성과 장소성을 기반으
로 설정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앞에서 비교하였던 전남광주의 예를 보십시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줄기차게 518을 앞세워 사회, 문화, 경제의 영역을 대폭 상승시켜왔습니다. 올해로 광주비엔날레는 창설 30주년을 맞 아, 세계 30개국 72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국제적명성의 초대형 미술행사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광주비엔날레에 등장 하는 주제에는 늘 민중과 혁명과 투쟁의 구호가 삼투되어 왔습 니다.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이, 그들은 실로 아시아 최 고최대수준의 미술인프라를 구축해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 중에 전북전주에, 그들이 늘 입에 담는 호남이자 전라도로서 함 께하는 부가적 혜택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매번 세계적인 미술관계자들이 광주로 몰려갈 때, 우리 전주는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문득 20년 전, 같은 건물 위아래층을 작업 실로 쓰면서도, 기자나 큐레이터 등 미술관계자들이 방문할 때 단 한 번도 저를 초대하거나 소개해준 적이 없는 어떤 대학 선배 가 생각나네요. 여하간에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 우리라 여기는 남의 동네잔치판을 구경만 하다가, 급기야 이번에는 전라북도가 자랑하는 국악의 판소리라는 타이틀을 내어주고, 전북이 근원지 인 동학마저 518의 의미를 확장시키는데 동원되었습니다.2) 전남 광주가 이렇게 전라도라는 코드를 자기화시켜 지역문화를 확장 시킬 때, 전북전주는 그것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왔습니다. 심지 어 전남지역에서 발행하는‘전라도’라는 계간지는 거의 대부분 전 남지역의 관광지와 사람을 소개하고 있으며, 전북지역은 가뭄 에 싹 나듯 어쩌다 한두 페이지씩 다뤄집니다. 영화판은 또 어떻 습니까? 전북지역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은 전남지역의 끈적한 사투리입니다. 대한민국사람 대부분은 전북전주의 사투리가 무엇인지 잘 모를 겁니다. 우리는 그만큼 우리의 문화 속에서, 전북전주를 전남광주에 은근히 흡수시키 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살아왔습니다. 호남권이 ‘전라도’ 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그 광역대의 혜택을 전남광주가 대부분 차지하는 가운데, 전북과 전남의 관계는 전남의 필요와 이익에 우선하는 선택적 우호관계라는 것을 확증하는 기사를 적잖이 접하게 됩니다.3)
광주의 젊은 작가들과 미술대학생들에게 흔히 칭해지는 말은
필자는 ‘외세타파 보국안민’을 기치로 내세운 동학정신은 3.1운동에 귀결되는 것으로, ‘독재타도 민주항쟁’이 구호였던 518과는 시대적 맥락과 혁명의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라 판단한다.
전북보다 지역인재 채용기관이 2배 많은 광주·전남 혁신도시를 묶는 광역 채용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지역인재 채용 대상 전북 이전기관의 채용규모가 50여 명인데 반해 광주·전남은 350명이 넘을 정도로 차이가 컸습니다. 이미 대구·경북과 울산·경남 등은 광역 채용에 합의해 합동 채용 설명회를 열며 지역인재를 함께 뽑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북의 요구에 광주·전남에서 응하지 않으면서 호남권 광역 채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https://n.news.naver.com/article/659/0000027562 https://n.news.naver.com/article/659/0000027562 2024,11,28, 전주mbc 강동엽기자.
‘비엔날레 키즈’라는 것입니다. 광주전남의 비엔날레 키즈들에게 는 비엔날레수준과 미술관작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부푼 기대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전북전주의 키즈들은 어떻습니까. 그나마 우리지역의 젊은작가들을 위한 가장 든든한 기관인 전북관광문 화재단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창작지원비예산조차 날려버리 는 그런 결과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4)
여러 가지 반성을 하다보면, 우리 전북전주의 미술이 견지 하고 나아가야 할 가치들이 수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 이 무엇인지는 제가 감히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우리지역의 미술생태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 으로 노력해 왔는지, 오늘처럼 이렇게 몇 차례 논의를 진행했다 는 기록만으로 자족해 오진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런 반성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먼저 우리지역의 미술문화를 위한 인문사회적 목표를 단계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전북전주를 상징하는 미술영역을 정립하여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이자 조선왕조의 뿌리 라 할 수 있는 전북전주의 정체성을, 예술형식과 내용에 삼투시 키고 집중적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지역의 역사, 사회, 풍토등 과 관련없이 현대미술과 동시대를 같이 호흡한다는 명분하에, 무분별하고 무의미한 성과를 만드는 미술전시같은 것들은 지양 되어야 합니다. 우리지역을 상징하는 미술문화는, 전북전주의 역사성과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탐색하고 찾아내고 적극적 인 지원으로 실험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양태로 드러 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미술의 문제를 인구와 경제의 규모에 의탁하여 판단하 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미술행사로 유명한 도시들 중 베니 스(27만), 뮌스터(33만), 가나자와(44만)등은 전북전주보다 규모 가 작은 도시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소도시들은 성공적인 미술행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끊임없이 관광 객을 유치하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우리 전주는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문화도시로서의 가장 좋은 명분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셋째, 전문가집단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전업작가군을 두텁게 만들고, 미술이론가와 기획자, 전문학예사등의 ‘전문 적인’ 양성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먼저 대학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지만, 현장에서도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합 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는 이 고장에서 한국화작가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한국화 및 한국미술이론 전문가는 거의 전무 합니다. 태조와 동학 등 전주를 상징할 수 있는 특유의 문화코드 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를 골고루 비벼낼 수 있는 미술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마치 비빔밥처럼 전북전주 다운, 오직 전북전주를 상징하는 그런 행사와 전시를 지원하고 지속시 켜야 합니다.
전북전주가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낙후되었다 평가 받는 이유는, 다른 지역에 상대적으로 작은 지원과 작은 전문 인구, 작은 이벤트로 거대한 부흥의 효과를 보겠다는 과욕 때 문입니다. 투자 없는 성공은 도박에 가깝습니다. 지역특유의 미 술과 이를 통한 글로컬의 성립은 복불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도전과 투자, 그리고 반성의 데이터가 쌓여 탄탄한 문화역량을 구축하게 된다는 점에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우리 전북전주가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우리지역만의 가치인프라를 쌓아나갈 때, 우리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도시로서 의 성공에 한걸음 씩 다가갈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10년을 계획하며.
우리가 우리 전북전주의 미술문화를 말할 때, 컬렉터의 부재 에 대해 성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우리미술에 대하여 가치인식을 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수집가가 미술작품을 구매 하려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미술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의 폴리옥션에서 낙찰되는 국화가격 의 수준을 보면 이 점은 분명해집니다.5) 우리의 미술품 가격 가치관속에 한국화영역의 가치평가와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시쳇말로 킹 받을 정도로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근대 6대가의 작품조차도 몇백만원에 거래되는 현실입
25일 전북자치도의회에 따르면 문화안전소방위원회는 지난 22일 문화관광재단 예산을 심사했다. 요구액이 210억7240만원이었으나 절반에 가까운 87억4780만원이 삭감됐다. 이 중에는 지역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지역문화예술특성화 지원 예산’ 31억 8200만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예산은 전북지역 예술인들이나 예술단체의 창작 역량 강화와 성장 도모를 위한 예산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7927897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7927897 2024,11,26. 뉴스1, 김동규기자
제백석, <송백고립도>, 718억원 / 이가염, <만산홍편>, 534억원/ 반천수, <응석산화지도>, 495억원/ 서비홍, <구주무사낙경운>, 473억원/ 장대천, <발채산수>,
426억원/ 우관중, <사자림>, 190억 / 부포석, <두보시의도>, 150억 등.
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작품성이 동시대 수백수천억을 호가하는 서양의 거장들에 비해 떨어져서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미술에 대해 자해수준의 저평가를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괴스러운 현실은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 고 물려줘야 할 위인들의 고귀한 유물에도 여실히 적용됩니 다.6) 컬렉터는 나비와 같고 미술시장은 화단과 같습니다. 꽃이 피지 않은 화단에 나비가 몰려들 리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전북 전주의 미술판을 제대로 일구려는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관심 과 활동이 없이, 그저 무심한 냉소만이 가득하다면 우리고장의 건강하고 희망찬 미술환경은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지금까 지 구구절절 밝힌 바를 정리하면, 우리 전북전주의 미술판에 부족한 것은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아니라, 전문적 미술환경을 구축하는 예술적 인프라 라는 것입니다. 강조하였듯 지역특유의 미술문화판의 정립 없이는, 지역미술계의 부흥은 절대 가능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북전주를 말할 때, 즉각적으로 떠올릴 만한 미술형식의 발굴 및 정립과 적극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 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