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휘(미술비평 / 미술이론)
작업실 곳곳에는 드로잉과 습작들이 흩어 져 있고, 재료 실험이나 화면 구성의 변주 같은 다양한 시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장영애의 작업실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미술학원 으로 쓰였던 공간이다. 학생들과 그림을 나누 던 장소가, 시간이 흐르며 이제는 오롯이 작가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작업에 더 집 중하기 위해 학원의 간판을 내리고, 내면과 외 부를 연결하는 실험실로 전환한 것이다. 장영 애의 작업실은 단순한 제작 공간이 아니라, 과 거의 학원 시절을 품으면서 현재의 실험실이 된 장소다. 가르침의 기억과 창작의 시간이 포 개진 이곳에서 그녀의 회화는 우리에게 묻는 다.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와 더불어 지속될 수 있는가?”
장영애가 2017년부터 천착해온 프로젝트 의 이름은 〈수퍼해피 SuperHappy〉다. 다소 나이브하게 들리지만, 이 명명은 오히려 행복 을 단순한 긍정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 지속 가능성과 구조적 조건을 되묻는 장치다. 장 영애에게 ‘수퍼해피’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 라, 불완전성과 긴장, 그리고 관계적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긴 여정의 표지다. 그의 붓질은 종종 ‘무위(無爲, non-agir)’를 닮았다. 억지로 무엇을 완결하려 하지 않고, 감각의 흔들림과 관계의 빈틈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작품은 완결된 행복의 선언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열렸다가 흩어지는 작은 장면들 이다. 그것은 낯설지만 따뜻한 마이크로 유토 피아이며, 동시에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는 응시의 장이다.
그의 가장 최근 전시는 지난 5월 전주기 독교근대역사기념관에서 열린 〈흐르는 광장 (The Fluid Square〉이었다. 이 전시에서 그는 광장을 “밀실의 집합체”로 규정하며, 개인적
내밀성과 사회적 관계가 서로 스며드는 역설적 공간을 제시했다. 화면에는 유동하고 얽히는 시선과 발걸음, 그리고 공존의 리듬이 드러났다. 대중의 밀실이 곧 광장이 되고, 개개인의 밀실 역시 또 하나의 광장이 된다는 역설. 그 역설이 작품 속에서 진동하며, 불완 전하지만 잠정적인 공존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는 12월, 같은 제목으로 한벽 문화관에서 열릴 개인전은 이 흐름을 잇되 또 다른 변화를 담아낼 예정이다. 동일한 제목 아래 전개되는 이번 전시는 지난 5월의 작업에서 드러난 주제와 감각들을 확장하며, ‘흐르는 광장’이 어떻게 다시 다른 장면으로 변주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장영애는 스스로를 자주 먼지에 비유한다. 으레 하는 겸양의 언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지는 하찮고 미세하여 언제든 흩어져 사라질 수 있지만, 동시에 서로 부딪치고 뭉쳐 새로운 덩어리를 만들기도 한다. 우주의 먼지 입자가 모여 행성을 이루듯, 사소해 보이는 조각들이 모여 세계를 구성한다. 그래서 먼지는 곧 연약하면서도 무한히 변주되는 존재 방식의 은유다.
이 자기 비유는 곧 회화의 태도로 이어진다. 장영애의 회화는 무의미성과 주체성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회화의 익명성’ 속에서 스스로를 지워내려 한다. 그러나 지워진 자리에서 또 다른 현존이 두텁게 드러난다. 그는 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연약함을 두터운 이미지로 바꾸어놓는다. 이때 회화는 죽음과도 같다. 주체가 소멸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움튼다는 의미에서, 장영애의 회화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한 죽음, 곧 “불가능성의 가능성(Möglichkeit der Unmöglichkeit)”으로서의 회화라 부른다면 지나친 말일까.
물가에 서 있는 분홍 토끼는 나 자신이다. 토끼가 바라보는 물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내면 깊숙이 자리한 상상과 즐거움이 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볼 때 가장 ‘나’다워진다. 억누르지 않고 감정을 드러낼 때, 내 그림자는 파란색이 된다. 이 작업의 출발점은 내가 어릴 적 좋아하던 책 *「이모의 꿈꾸는 집」*이다. 이 책 속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감정을 꽁꽁 숨기고 사 는 사람은 그림자가 색을 내지 못해. 기분이 좋을 때만 그림자가 색을 내는 거야.”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평소 나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마주할 때만큼은 진심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그 순간의 나를 그려낸 것이다.물가의 토끼는 현실 속의 나, 물 위의 패턴은 내면 속 나를 상징한다. 멀리 떠 있는 조각배와 한가로이 앉은 개구리는 나의 평화로움, 여유, 조용한 행복의 시간을 나타낸다. 화면 구성은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정리했다. 여백을 통해 시선이 본질적인 감정에 집중되도록 하고 싶었다. 이 작업은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만 나타나는 색, 그 순간의 진심을 기록하기 위한 그림이다.